2006년에 출현했지만 그분(!)들의 자애로운 볕 한쪽 쬐지 못하고 음습한 응달에서 올드하기 짝이 없는 글만 써왔다고 푸념하는 소설가 이숙경이 세 번째 소설집 『곧 죽어도 로맨티스트』를 선보인다. 에세이를 포함하면 10번째 책이다.
마흔 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매일신문과 경남신문, 이렇게 두 군데 신춘문예로 세상에 등장한 이숙경 작가는 정통소설이 보여주는 올드함에 영혼을 뒤흔드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놓았다. 동료작가들이 꽃가루 좀 그만 뿌리라고 그렇게나 조언해도 그녀는 여일하다.
“이렇게 쓰고 싶은 걸 어떡하니!”
웬만큼 자기 성격대로 쓰는 스타일이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과 이해와 감정이입이 없이는 단 한 줄도 못쓴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또 꽃가루 세례를 무수히 받게 될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문장을 만지는 솜씨며 인물을 다루는 역량은 그가 왜 작가일 수밖에 없는지를 입증하는 유력한 논거들이다.
이번 소설집 역시 작가 특유의 독보적인 우울함과 도발성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불행을 한껏 부조시키는 스토리텔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찌하여 등장인물 태반이 황지우의 시구처럼 “나, 이번 生은 베렸어.”라는 고백을 하는지 의문이지만, 이숙경 문학 특유의 매력이자 지표인 가족서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서사는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문장력과 디테일을 다루는 솜씨, 스토리를 짜나가는 재능 등을 모두 갖춘 작가임을 유감없이 증명해보이고 있는 아홉 편의 소설은 세간의 무심함 속에서도 독자들의 가슴을 후벼 팔 것이 분명하다. 그녀의 마지막 일성.
“지리멸렬한 세상에서 지리멸렬하게 살아남아 지리멸렬한 소설들만 쓰다 간다”
평생 소설(님)에게 그토록 처절하게 애정을 갈구해왔지만 결국 다정한 포옹 한 번 못 받아본 채, 작가는 소설과의 연애를 끝낼 모양이다. 하지만 비록 실패를 자인하고 작가 폐업을 선언하기 직전이기는 하나, 자본주의 세속의 규율에서 밀려난 주변부 존재에 대한 애정, 그 애절한 애정으로 그녀의 소설세계는 확장되었다고 믿는다.
주류 질서를 비껴가는 인물들의 고요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형상화하는 것, 그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을지라도 끌어안아 주는 것. 작가는 늘 그 중심에 서 있었다고 소심(?)하게 자부한다.
내면의 독자성을 자랑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인간들의 부류에 작가는 발을 들여놓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그 인간적 실패 속에서 독자들을 만난다. 결국 실패의 대상으로서 유일한 작가의 자아는 실패의 주체로서 모든 독자와 공유하는 자아이다.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그렇게나 슬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아쉬움은 많았으리라 짐작한다.
이런 하소연들과 내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리멸렬한 문장을 꼭 넣어달라는 작가의 고집을 편집자는 (어쩔 수 없이)수용해야 했다. 책 팔 생각이 전혀 없는 작가를 만나면 꼭 이렇더라. 이럴 때 작가님은 꼭 이렇게 대응하시더라.
단편 하나하나에 작가의 한줄 마음을 부언해 달라는 요청마저 거절하지 못하는 힘없는 편집자는 받아쓰기 하는 심정으로 작가의 마음이라는 문장 몇 개씩을 ‘복붙’하여 붙인다.
아참, 작가 주장에 따르면 이 소설집을 마지막으로 소설에 대한 모든 미련을 접겠다고 하나, 워낙 감정선이 오락가락하니 향후는 모를 일이다.
소설가. 에세이스트.
한글을 제대로 알기 전인 미취학아동시절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래,
학창시절 내내 이런저런 글 관련 상을 휩쓸면서 보냈지만 아버지 사업실패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 뒤늦게 글공부에 뛰어들어 마흔여덟에 매일신문,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하지만 곧이어 하우스 푸어와 파산의 길고긴 터널을 통과하며 어영부영 10번째 책을 출간. 가을 쯤 정리하는 마음으로 에세이 하나 더 발간한 후 폐업할 예정.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6년 매일 신문 신춘문예,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9년, 2018년, 2023년 경기문화재단 창작 지원 및 예술지원 선정.
2023년 아르코 문학 창작기금 선정.
장편소설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소설집 『유라의 결혼식』, 『1944, 테러리스트, 첼로』
산문집 『바람의 신부와 치즈케이크』, 『하나님의 트렁크』, 『대한민국에서 교인으로 살아가기』, 『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가주세요』, 『자폐클럽』,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등이 있다.